소향素鄕 이상로李相魯 시인을 다시 말한다(4)

‘문화도시 부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3주년 기념 연재
이 세상, 얼마나 더 잠 못 이루고 기다려야 하는가!
부천에 살아 있는 소향 이상로 시인의 흔적

부천시민신문 | 기사입력 2020/12/28 [09:44]

소향素鄕 이상로李相魯 시인을 다시 말한다(4)

‘문화도시 부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3주년 기념 연재
이 세상, 얼마나 더 잠 못 이루고 기다려야 하는가!
부천에 살아 있는 소향 이상로 시인의 흔적

부천시민신문 | 입력 : 2020/12/28 [09:44]

소향관과 소향공원

▲ 구자룡 시인 캐리커처    

부천시에는 소향 이상로 시인의 흔적이 몇 군데 있다. 첫 번째, 부천시 소사본동 경인로 옛길 731번지 엣 소사구청 강당 이름이 소향관이다.

 

1996년 소사구청을 신축하고 별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지금은 소사어울마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전체 면적은 1,535㎡로 2층 건물, 300석 규모다. 이 건물은 이상로 시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민선 초대 이해선 시장이 명명했다. 구도심의 낙후된 소사 지역에 새롭게 확충된 문화 시설로 한때는 부천시에서 일어났던 각종 문화 예술 공연을 비롯해 부천국제영화제 때마다 추억의 한국영화 상영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 지금은 소사어울마당이 된 소향관의 외관  © 부천시민신문

 

두 번째, 그린타운 아파트 옆, 중동 조마루길 264에 있는 소향공원이다. 부천시민들의 편의 증진과 복지 향상을 위해 중동 신도시 조성과 함께 1993년 12월 21일 1만 7,273㎡의 면적에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소향공원’이라고 쓴 큰 표석이 있다. 표지 돌에 차라리 시를 새겼더라면 ‘시비詩碑’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11월 2일, 27년 만에 보수공사를 마치고 재개방했다. 

▲ 소향공원을 알리는 비석  © 부천시민신문

 

그런데 이번 연재를 준비하면서 자료 조사를 하다가 인터넷 <울산매일신문(2016년 11월 13일자)>에 실린 이상한 칼럼을 발견했다. 임석 시인·작가촌 ‘숲’ 촌장이 쓴 삶의 조화와 멋 <향토 시인과 시비>라는 제목의 [문화산책 칼럼]인데  황당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아무리 칼럼은 신문사의 견해와 다르다 할지라도 소위, 일간신문이 이렇게 왜곡을 해도 되는지 의문이 갔다.

 

소향공원에는 시비가 하나도 없고, 더욱이 이 부지는 이상로 시인이 기증한 것이 아니라 중동 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공원 부지로 조성되었을 뿐이다.  

 

인용문 처리 (앞부분 생략) 얼마 전에 경기도 부천시를 다녀왔다. 이곳에는 문화재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내 한복판에 별로 크지 않는 허름한 공원이 있어 그 곳에 갔다. 공원 이름은 소향공원이다. 소향 이상로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나 이 땅을 좋은 마음에 양식이 되는 일에 써달라고 이 땅을 부천시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시에서는 우리 고장에서 태어나고 우리 고장의 시를 쓴 시인의 시비를 하나씩 세워 공원을 조성하게 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지가도 높은데 씀 듯 팔아 개인 이익을 챙길 수도 있었는데 소향은 기꺼이 향토 시인들의 시비를 세우게 한 것이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한 제작예산이 많은데도 시비를 세우는데 마다하지 않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경기도 부천시의 적극적인 행정력도 엿볼 수 있었다.(하략) 임석 시인, <향토 시인과 시비> 일부

 

이 칼럼에 따르면 이상로 시인이 땅을 기증해서 ‘소향공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천시가 향토 시인들의 시비를 세우는데 마다하지 않고 지원했다고 했다. 소향공원은 1993년에 조성 완료되었고, 이상로 시인은 1973년에 작고했다. 즉, 사후에 이상로 시인이 땅을 기증한 셈이다. 하지만 이상로 시인이 땅을 기증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읽은 적이 없어 어떤 자료에 수록된 내용인지 알아보기 위해 임석 시인에게 직접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대답이 황당했다. 부천에 와본 적이 없고 어떤 ‘사보’에서 읽은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기억이 안나는…. 

 

부천에는 역곡 춘덕산에 있는 박진 장군 전승비처럼 왜곡된 역사기록이 몇 군데 있다. 한 사람이 잘못 기록한 내용이 인터넷이나 보고서, SNS 등으로 퍼지면서 또 다른 연구자는 그것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의 경우도 어이없는 일이다. 작가가 글을 쓰기 전 자료 조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실수는 안 했을 텐데….  

 

시간이 좀 흐르긴 했지만 부천시에서는 이 글에 대해 정정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사실을 모른 채 임석 시인의 글을 읽는 독자는 이 내용을 그대로 믿을 공산이 크다. 결론적으로 소향공원에는 그 누구의 시비도 없다. 그러니 부천시에서 시비를 세우는데 적극적인 지원을 한 바도 없을 뿐더러 더욱이 소향 이상로가 땅을 기증한 일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없기 때문이다.  

 

소향로와 소향시 문학동인

▲ 소향로와 소향길 안내도  © 부천시민신문


세 번째, 부천 중동 113-2번지에서 상동 547-2번지 사이의 도로명이 ‘소향로’이다. 도로의 폭은 25m이고, 왕복 4차선이다. 총 길이는 1.65㎞이다. 부천 상동에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의 중동 인터체인지로 나아가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다. 부천시청 앞 문예로와 만나 다시 중동 미리내마을을 지나 원미경찰서 앞 삼거리 신흥로와 만나는 길이다. 소향은 우리 곁에 늘 있었던, 우리 부천의 문인이다. 정작 우리는 그 사연도 모르고 그냥 처음부터 우리 발밑의 길이었던 것처럼 마냥 밟고 다녔고, 무심코 그 길 위를 지나다녔다.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신경을 써야겠다.

 

이 뿐만 아니라 1991년 복사골문학회에서 제정한 ‘복사골문학상’은 소향 이상로의 문학 세계를 기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또 하나 있다. 복사골문학회 안에 시 쓰는 모임 중에 ‘소향문학동인’이 있다. 1993년 창립된 이 동인은 원래 등단하지 못한 신인들의 모임이었으나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은 모두 등단한 작가들의 동인으로 소향 이상로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소사고등학교 교사들이 발행한 문집 <소향>도 있다. 이렇게 그동안 이상로 시인이 부천 출신이라는 사실을 수없이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천시에서는 외면 당하고 있다. 

 

고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소향 

▲ 소향 이상로     ©부천시민신문

지난 2017년 수백억을 들여 심곡 복개천을 뜯어내고 부천 소명여고 앞 사거리에서부터 심곡동 기둥교회 앞까지를 생태하천인 ‘심곡시민의 강’으로 복원했다. 그리고 그 위에 만들어진 다리橋마다 부천에서 활동한 문인들의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탄생한 다리가 ▲변영로교 ▲펄벅교 ▲목일신교 ▲양귀자교 ▲정지용교이다. 그런데 부천 출신 이상로 시인의 이름은 없다. 왜 없을까? 

 

변영로 외에는 모두 이방인인데 이방인 문인은 그렇게 추앙하면서 내 고향 부천 출신 문인은 왜 푸대접을 할까? 이유를 물어보니, 참 기가 막히다. 내세울 작품이 별로 없다는 궁색한 답변이 돌아온다. 그러면 연구는 해보았는지 자료 조사는 해보았는지 자못 궁금하다. 작품이 별로 없다니 유명하지 않다는 말인데, 그의 작품을 앞부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시 속에는 성곡동, 작동, 소사를 노래한 것이 많다. 호를 ‘소향’이라고 쓴 것만 보더라도 그는 부천이 고향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내 자식이 비록 못났고 별 볼 일 없다하더라도 잘 보듬고 격려해 준다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듯, 지금 우리는 고향 문인을 학대하고 외지인만 우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구 90만의 부천, 토박이보다 외지인이 더 많아서 그러는 것일까?

 

물론 위에서 언급된 분들도 부천의 문학을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선양작업은 부천시가 아니어도 작가드르이 탄생지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부천에서 태어난, 부천의 향토 작가들은, 부천에서 찾고 기리지 않으면 사장死藏될 수밖에 없다. 또 소향 이상로와 같은 문인들의 자산이 모여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의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로 시인 연보]

-1916년 9월 5일, 경기도 부천군 계남면 (1941년 소사읍이 됨) 궁리 10의 산 4번지에서 아버지 이근영과 어머니 부평이씨 사이에서 7남매 막내로 전의全義 이씨 28대 손으로 출생. 전의 이씨 족보에 의하면 19대부터 (부평군 수탐면, 부천군 계남면, 부천군 소사읍까지) 약 300여 년간 조상 대대로 궁리에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위로는 태로, 정로, 직로, 세 형이 있고, 누님 세 분이 있다.

 

-1917년(2세) 어머니 별세

-1925년(10세) 아버지 별세

-1929년(13세) 경기도 김포보통학교 졸업

-1935년(19세)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1938년(22)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수필가로 등단

-1941년 일본 유학시절, 박두진 시인과 교류하면서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함. 이때부터 ‘소향’이라는 호를 씀. 2014년 발행된 전의 이씨 족보에는 호가 소경素卿으로 표기돼 있다. 시 <결별訣別>을 발표하고 시인으로 등단.

-1943년 일본 메이지학원 고등부 문학부 중퇴하고 귀국. 그러나 이상로는 스스로 일본을 방랑했다고 함.

-1944년 진주 하씨 복순과 결혼.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가입. 대구에서 발행된 문학동인지 《죽순》 창간호에 시 발표. 한국방송국 사보 《협회시대》 편집 담당.

-1947년 민중일보 기자로 입사. 월간 종합지 <민중>, 문학지 <문화>를 편집함. 시 <별빛 아래> 씀. 장남 영세 출생. 

-1948년 박두진 시인으로부터 받은 편지 ‘영동을 지나며’가 중등국어(이숭녕 편저)에 수록됨. 시 <行路행로> 씀.

-1949년 조향, 박인환, 김경린과 함께 동인지 후반기 《새로운 도시 시인들의 합창》  출간. 시 <구름日記> 씀. 

-1950년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참여. 공군 창공구락부에 소속. 아동문학가 마해송(단장), 시인 조지훈(부단장), 소설가 김동리(부단장), 소설가 최인욱(사무국장), 유주현, 곽하신, 방기환, 박두진, 최정희, 박목월, 이한직, 박훈산, 전숙희, 김윤성, 황순원 등과 종군 작가로 활동. 월간 공군지 《공군순보》 편집장. 공보처 문화선전국 계장, 국방부 편수관 등을 역임. 차남 장세 출생.

-1953년 시집 《귀로》(백조사) 출간. 대구 향촌동 상록수다방에서 출판기념회 개최. 편저 《사회와 인생》(보문각) 출간.  방기환과 함께 공저 《모범 서한서》(동서문화사) 출간. 월간 <현대문학> 통권 6호에 본적을 경기도 부천이라 수록함. 주소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 91의 3번지로 기록. 

-1954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사무차장(이사장은 변영로). <서울신문> 학예부 차장. 월간 <신천지> 편집 담당.  공저 박종화, 마해송과 함께 《내가 본 군인》(국방부) 발행.

-1955년 롱펠로우의 장편서사시 《에반제린》 번역, 동아일보에 연재. 편저 《문장보감》(법조사) 출간. 공저 안병욱, 변영로와 함께 《샛별 속편, 국어정화 보감》(한민문화사) 출간.

-1956년 <동아일보> 학예부 부장 시절 서양화가 김성환을 발탁, 일일 만화 <고바우> 연재 시작. <소년동아일보> 부장 역임, 타블로이드판형의 <소년동아일보> 발행. 3인 동인지 이형기, 김관식과 함께 《해 넘어가기 전 기도》 발간.

-1957년 시집 《불온서정》(신교출판사) 출간. 수필집 《옥석혼화》(조문각) 출간. 김종문, 김춘수, 김수영, 김규동 외, 동인지 《평화에의 증언》 발행. 

-1958년 번역서 사랑의 서사시 《롱펠로우의 에반제린》(청문각) 출간.

-1959년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재직. 최성실, 김향안, 윤교중, 김성진과 함께 수필집 《쑥꽃, 사어록》(법조사) 출간. 편저 《당장 필요한 여성의 에티켓》(여원사. 1959년) 별책부록 출간. 3남 화세 출생. 

-1960년 수필집 《어느 나비가 주는 기억만치도》(수도출판사) 출간. 편저 《현대서간문법》(법조사) 출간. 편저 《마음의 비빌, 세계 지혜인의 일기》(법조사) 출간. 박두진·조지훈·박화목과 함께 공저 《피어린 4월의 증언》(연학사) 출간.

-1961년 시집 《세월 속에서》(일조각) 출간. 편저 《현대서간문법》(여원사) 출간. 

-1963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1964년 예술종합동인 《문장가》를 창립하고 동인지 창간호 발행. 시 《꽃피는 남녘은》 나운영 작곡으로 발표. 공저 《인생 비어록》(세문사) 출간. 편저 《한국 전래동화 독본》(을유문화사) 출간. 월간 《문학춘추》 제2권 4호에 서울 영등포구 상도동 30의 410번지에 살았던 것으로 기록됨. 

-1966년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편집국장 맡음. 문교부 발행, 고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영동을 지나며> 다시 수록됨.

-1967년 번역서 《인도 아동문학 독본》(을유문화사) 출간. 번역서 《단테의 신곡》(인문출판사) 출간. <불교신문> 편집국장.  

-1968년 부천시 고강동 수주 변영로 시인 묘 앞에 향나무 한 그루 심음. 

-1969년 《수주 변영로 회상기》 발행. 서울 흑석동 예수교회에서 국어와 한문을 강의함.

-1970년 《이상로 전 시집》(보문각) 출간. 한국크리스찬문학가협회 제4대 시분과 위원장 선임(회장 임옥인).

-1972년 한국크리스찬문학가협회 제5대 부회장 선임(회장 김현승)

-1973년 8월 3일 서울 상도동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당시 시흥군 수암면 양대리) 산57 장로교 남현교회 묘지 ‘남현동산’에 안장됨.

 

[사후 연보]

-1973년 8월 4일 <동아일보>에 부고 기사 게재. 8월 5일 친구 박두진 시인이 <동아일보>에 추도사 게재.

-1976년 화가 박서보가 디자인하고 서지학자 안춘근 글, 박두진 시인이 글씨를 쓴 ‘밤이 새면’ 시비 건립

-1978년 한국예총 경기도지부 부천지구회에서 발행한 《부천예총》 창간호에 이상로 시인이 부천 사람이라고 처음 알림. 

함동선 시인의 저서 <한국문학비>(시문학사)에 이상로 시비 수록됨.

-1987년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이 이상로에 대한 취재를 시작.

-1988년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교지 《수련》 제 5호 이상로 취재기 <글을 써서 뭣 한단 말이냐> 수록.

-1989년 구자룡 시인이 <부천정론시민신문>《복사골문학기행》에 ‘이상로 편’ 게재

-1991년 부천 복사골문학회에서 제정한 ‘복사골문학상’의 의미를 “변영로, 정지용, 이상로 시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명명. 11월, 함동선의 <한국문학비>(청한 출판사)에 이상로 시비 수록. 12월, 김구림 시인이 <한국의 문학비를 찾아서>에서 이상로 시비를 찾지 못했다고 기록함.  

-1992년 복사골문학회 시동인의 명칭을 ‘소향시’ 동인으로 명명함.

-1993년 5월, 부인 하복순 여사가 3남이 거주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이상로의 묘를 이장함. 

-1993년 부천시 중동 조마루로 264에 ‘소향공원’ 조성. 

-1994년 부천 중동 113-2번지에서 상동 547-2번지 사이에 길을 ‘소향로’로 명명. 부천복사골문학회 동인 중, ‘소향동인’ 명명. 

-1996년 부천 복사골문학회, 문학의 해 기념 《부천문단》 9집에 이병기 글, <이상로, 화안한 복사꽃 피리니> 수록. 복사골문학회, 문학의 해 기념 변영로, 정지용, 이상로를 기리는 시낭송회 개최. 

-1996년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동 64번지(현 경인옛로 73) 소사구청 강당의 명칭을 ‘소향관’으로 명명.

-1999년 시 《추도의 노래》가 조두남 작곡집(세광출판사)에 수록.

-2003년 구자룡 엮음 《문학으로 만나는 복사골 부천》(산과들)에 ‘이상로 편’ 수록.

-2007년 박재천 시인, 김구림 시인의 말을 인용해 이상로 시비가 없어졌다는 글을 씀. 

-2013년 부천 소사고등학교 교사 문집 《소향素鄕》 발행.

-2013년 시 《기러기》 신동영 작곡, 대구 가곡의 밤에서 발표.

-2016년 임석 시인이 <울산매일신문>에 이상로 시인이 ‘소향공원’ 부지를 부천시에 기증했다는 내용의 칼럼 기고.

-2018년 3월 24일 구미리내 시인, <NEW부천시민신문> 제107호 ‘시가 흐르는 부천’에 이상로 시인편 게재.

-2020년 8월, 사진작가 차왕명과 함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산 57번지 ‘남현동산’에서 4개월간 이상로 묘와 시비를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함. 구자룡, <NEW부천시민신문>에 평전 <이상로 시인을 말한다> 연재. 구자룡, 부천문단 제32집에 <이상로 시인을 말한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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