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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왜곡에 훼손까지…문화도시의 현주소
소사본동 '정지용 없는 정지용 향수길'...주차장으로 전락
기사입력  2020/06/29 [07:03] 호수 164   나정숙 기자
길 안내 표시부터 ‘오류’ 투성이...문학창의도시 명성에 ‘망신살’ 인용자료 원문 훼손, 정지용 행적 고증자 이름만 빼버려 ‘의문’     ▲ 정지용에 대한 소개 글. 그가 주로 왕래햇던 곳을 소사본동이 아니라 '소사동'이라 적었다. 바로 앞에 주차된 차량에 막혀 사진 촬영이 매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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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안내 표시부터 ‘오류’ 투성이...문학창의도시 명성에 ‘망신살’ 
인용자료 원문 훼손, 정지용 행적 고증자 이름만 빼버려 ‘의문’    

▲ 정지용에 대한 소개 글. 그가 주로 왕래햇던 곳을 소사본동이 아니라 '소사동'이라 적었다. 바로 앞에 주차된 차량에 막혀 사진 촬영이 매우 어려웠다.     © 부천시민신문


소사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돼 올해 초 완공된 소사본동 ‘정지용 향수길’ 600여 미터 전 구간이 주차장으로 변질돼 예산 낭비 지적이 일고 있다.

 
부천시와 소사본동 행정복지센터, 부천시 재생지원센터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정지용 향수길’ 조성사업은 “고향도 아니고 행적과 무관한 곳에 이름만 붙여선 안된다”(본지 174호 1~2면 보도)는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도시재생센터는 “실제 정지용 선생의 행적이나 역사적 고증과는 다른, 재생사업의 일환”이라며 강행해 지난 2월 공사를 마쳤다. 

▲ 주차장이 된 '정지용 향수길'. 차량들로 인해 벽면에 게시된 내용을 읽을 수가 없다.     © 부천시민신문


2019년 10월부터 본격 추진한 이 사업은 정지용 시인이 3년 정도 머문 것으로 알려진 부천시 경인로 316(소사본동 89-14)에서부터 서울신학대학교 왼쪽 입구 일명 ‘성주산 가족 산책길’을 거쳐 부천배드민턴전용체육관 전까지 이르는 600여 미터에 정지용의 작품과 이를 형상화한 이미지 등을 설치한 것이다. 100여 편이 넘는 정지용 시인의 작품(시) 가운데 유명 작품은 거의 망라된 듯 상당히 많은 작품이 다양한 서체와 내용에 어울릴만한 이미지와 함께 설치돼 있다.

 

‘향수(고향을 그리는 마음)’의 이미지를 비롯해 작품 연대기, 야광夜光을 곁들인 특별한 디스플레이까지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띈다. 그러나 같은 동일한 이미지를 설치하거나 야광에 신경을 쓰다 보니 오히려 낮에는 읽기 어려운 곳이 공존해 있었다. 표기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곳은 부천종합사회복지관 앞 보도에 새겨진 안내판이다. ‘향수길’로 향하는 첫 길잡이임에도 불구하고 방향이 잘못돼 있다. 표시된 것처럼 90도로 꺽인 왼쪽 방향이 아니라 100~110도 정도 왼쪽으로 기운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 잘못 설치된 이정표. 향수길로 가려면 신학대 정문 왼쪽 길로 올라가야 한다.     © 부천시민신문

 

‘정지용 향수길’ 명칭, 적절할까? 

이보다 더 부적절한 것은 ‘명칭’ 문제이다. 
본지 174호 기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향수’란 “과거의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단어로 정지용의 시 <향수>는 1927년에 발표된 시로, 1943~1946년까지 3년 정도 거주한 부천을 그리워하며 쓴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를 기려 이미 그의 고향인 옥천에 ‘정지용 향수 100리 길’이 조성돼 있다. 따라서 명칭의 유사성에서 ‘부천다움’을 찾기는 어렵다. 현재 상태로는 ‘정지용 향수길’ 보다 ‘정지용의 시詩가 있는 길’이 더 어울릴 법하다.

 
또한 현재 ‘향수길’로 조성된 곳은 정확하게는 정지용과의 관련성이 희박하다. 정지용은 부천시 경인로 316(소사본동 89-14)에 거주하였지만 근무지가 있는 서울과 성당이 있는 인천에 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면 부천역(당시 소사역)에서 전철을 이용해 이동했을 것이다. 또 그가 주로 가던 성당은 소사본동이 아니라 소사동에 있는 소사성당이었다. 인천 답동으로 예배를 보러 다니던 정지용은 어느 날 부천에 소사공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바로 거주지 옆이었다. 그러다 교인들의 요청으로 소사동에 위치한 적산가옥인 소림별장을 ‘소사성당’으로 창건하면서 현재의 소명삼거리 부근을 걸어 성당에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듯 정지용이 실제로 다녔던 길은 현재 조성된 ‘향수길’과는 거의 무관해 보인다. 따라서 ‘정지용 길’을 복원한다면 거주지를 중심으로 부천역과 소사동에 복원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은 작업자들이 게시한 설명문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인터넷 <부천시민신문> 2019년 12월 16일자 <다시, 부천에 남긴 지용의 흔적을 찾다> 참조)  사진 88번 소사동이라 표기했다.

 

자료 발굴 ‘구자룡’ 이름 삭제 이유는?  
또 하나는 그곳에 부착된 자료의 서술 내용이다. 솔직히 말하면 서술내용이 잘못돼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해 게시된 전체 작품을 원문과 비교해보진 못했다. 하지만 시작 지점에서 만나는 ‘부천 소사동에서 만나는 정지용의 흔적’ 부분에 인용된 자료는 명백히 오류였다.

 
정지용 시인이 부천에서 거주한 사실을 처음 밝혀낸 작가는 오랫동안 부천에서 활동해온 구자룡 시인이다. 그는 천주교 100년사를 집필하던 중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소사성당을 창립한 정지용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윤모 씨와 정지용 시인의 아들 정구관 씨를 만나 정지용의 행적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당시 정지용 시인이 납북작가로 알려져 있어 곧바로 이런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1988년 작품이 해금된 후인 1989년 8월 12일자 <부천정론시민신문> 2호 8면에 복사골문학기행 1. 정지용 편 ‘한국 현대시의 거봉 정지용’이란 제목으로 최초로 발표하였다. 이후 부천 지역신문을 비롯한 <한국수도권일보> 등 여러 곳에 관련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이곳에 게시된 자료는 2001년 5월 12일자 <옥천신문> 570호에 실린 ‘기획 정지용-3 밖에서 바라본 정지용 전북 고창군·부천시’로 시인의 고향인 옥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선양 사업을 취재 보도한 기사에서 인용해 실었다. 그것도 이미 이러한 내용이 발표된 지 10년도 더 지난 다음에 나온 기사를.

 
정지용 시인이 부천에 살았고, 그 흔적을 다행히 우리(부천) 지역 문인이 가장 먼저 발견해 발표한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사실인데, ‘부천에 조성하는 정지용 기념사업’에 굳이 외부에서 보도한 기사를 인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뿐만이 아니다. 기사 원문에 등장하는 고증자의 이름은 교묘하게 빼놓았다.

▲ 정지용에 대해 설명한 글(사진) 옥천신문 원문에서 고증자의 이름만 빼고 실었다.     © 부천시민신문

사진 자료에서 인용한 옥천신문의 원래 기사는 다음과 같다. 

▶우연히 발견된 지용의 흔적

80년대 초 구자룡(56) 시인은 부천의 천주교회사를 정리하게 된다. 교직생활을 하며 소사천주교 평신도회에 소속되어 있던 구 시인은 길지 않은 부천 소사성당 창설과 관련된 자료를 정리하던 중 어느 노인으로부터 충격에 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초창기부터 성당일에 관계한 신자들을 만나며 부천의 천주교사를 정리하던 중 어느 한 노인이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정지용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곳에 천주교회를 인증받기 위해 인천교구를 돌아다니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이 얘기를 듣는 순간 흥분해 지역 내 문학인들에게 연락을 했죠. 지용 선생이 이곳 부천에 살았다고"

 
그 당시 지용에 대한 얘기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나마 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구 시인의 귀에 얘기가 전해져 지용의 부천에 대한 행적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구 시인은 아들인 구관 씨를 찾게 되었고, 43년부터 45년까지 지용이 거주했던 집의 위치도 확인하게 되었다. 출처 :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

 

그런데 현장 사진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설치된 자료에는 정지용의 흔적을 발굴한 구자룡 시인의 이름은 모두 빠져있다. 실수라고 보기엔 너무 악의적이다. 원문을 훼손하면서까지 유독 그 이름만 빼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저작물의 경우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바꾸거나 첨삭할 수 없고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한다.

 

사실 왜곡 앞장서는 부천시, ‘문화도시’ 품격 훼손  

그런 면에서 이번 경우는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이 사업이 부천시에서 추진한 관급 공사인 점에서 보면 더욱 용납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부천은 유네스코에 가입된 문학창의도시인데  자료 사용에서 원저작자와 상의 없이 편의대로 인용문을 고쳐 싣고, 더욱이 정지용 시인의 부천 거주와 활동을 찾아내 밝힌 작가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은 ‘문학창의도시,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너무나 형편없는 일이다.  

 
부천시 재생지원센터에 따르면 ‘정지용 향수길’의 작품 설치와 조명 설치비용으로만 3억 6천여만 원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예산 투자와 상관없이 제기된 문제에 대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함께 현장을 방문한 양경직 향토사학자는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문화도시 부천’이라고 선전하면서 실제 사업에서는 실증도, 원칙도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부천시에서 추진한 것은 아니지만 ‘계남면 사무소 습격사건’ 유적지도 잘못된 내용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방치돼 있어 시민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유명인의 이름을 붙여 부천시를 빛내려 하거나 역사사실을 왜곡·훼손하지 말고 그대로 후손에게 전하도록 고증하고 찾아내는 일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며 “정지용 시인이 3년 거주했지만 행적이 많이 남아있는 만큼 제대로 고증해서 ‘정지용 길’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예산을 들여 조성한 곳이 주차공간으로 쓰여 아쉽다. 또 보도가 따로 없어 작품을 감상하며 걷다 자칫 사고 위험까지 예상된다.     © 부천시민신문
▲ 향수길에 정지용의 작품이 설치된 장소를 표시한 지도(사진 윗부분)와 정지용의 작품세계를 소개한 부분(하단)     © 부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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