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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골 뜨락에 내린 내 영혼의 별❽
부천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 기념 기획연재Ⅰ
기사입력  2020/03/13 [05:33] 최종편집    구자룡 시인
▲ 구자룡 시인 캐리커처    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 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 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 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연재 글은 지난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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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룡 시인 캐리커처   

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 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 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 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연재 글은 지난해 10월 16일 부천디카시협회(회장 정창배)에서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편집자 주>

 

내가 김소월에게 미쳐(?) 그 서러움을 달래려고 전국 고서점을 돌아 다니며 6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간 2000여종의 소월 자료를 수집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때 만난 시인 <진달래꽃 김소월> 2014

▲ 책 표지     © 부천시민신문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다. 환경정리를 하신다고 교실 뒤편 게시판에 붙일 그림이나 동시 한 편씩을 써오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된 까까머리 개구쟁이가 시를 알 면 얼마나 알겠냐만, 그래도 교실에 작품을 걸고 싶은 욕심에 집으로 돌아와 밤새 끙끙거려봤지만 헛수고였다. 생각 끝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 방으로 달려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베낄 요량이었다. 이 책 저책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뒤져가며 읽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때 누구의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쓴 것 같은 시 한 편을 찾아냈다.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은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도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


이 시야말로 누가 봐도 초등학교 어린이가 쓴 동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화지에 내 이름을 크게 쓰고 그림까지 그렸다. 다음날, 학교로 달려가 당당하게 선생님 앞에 내놓았다. 그런데 웬걸, 금방 들통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는 꾸중대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래, 이 시를 써오기 위해 얼마 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 모방도 창작이니까 열심히 해봐라.” 그리고는 내가 베껴간 시를 게시판에 걸어주셨다. 붉은 글씨로 ‘스스로 하기’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것 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철부지 악동은 신이 났다. 모방, 창작, 붉은 글씨,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이름 석 자가 교실 게시판에 걸려 친구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에 의기양양했다. 그 시가 바로 김소월 의 ‘금잔디’ 라는 시였다. 이렇게 나는 김소월을 처음 만났던 것이다. 그 후 틈만 나면 책읽기를 좋아했고, 용돈이 생기면 헌 책, 새 책 가리지 않고 사 모으기 시작했다. 문학 소년은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공업고등학교 전기과를 다녔지만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주신 용기를 발판삼아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 으로 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 무렵,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다. 그 당시 시화전이라는 것이 유행할 때가 있었다. 대학 축제 때 나도 학교 캠퍼스에서 개인 시화전을 하게 되었다. 한때는 화가가 되겠다며 화실을 들락거릴 때도 있었기에 자작시에 내가 직접 그림까지 그렸다. 시화전을 성황리에 마친 어느 날, 친구 한 녀석이 학교 신문을 한 장 들고 황급히 나타났다. 시화전에 관한 내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고 하면서 술 한 잔 사라는 것이었다. 신문을 펼치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생시인 구자룡, 개인 시화전을 보고>(건대신문 185호, 1964년 9월 2일 4면)라고 하는 글이 신문 한 면을 도배하다시피 한, 다시 말하자면 기사가 아니라 한 편의 평론이 실려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건국대학교에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였던 박승훈 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이 황송하게도 내 시화전에 대한 평을 써주신 것이다.


부녀父女 시인의 콜라보 <진달래꽃 소월시집을 찾아 서> 2016

▲ 책 표지     © 부천시민신문

“구자룡의 시는 죽은 소월이가 돌아온 것 같다. 소월이 죽은 지 30년도 넘었는데, 아직까지도 소월 타령을 하고 있느냐,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젊은이들의 의식구조가 부족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혹평이었지만, 이렇게 나는 청년시절 김소월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고 50여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초간본이 문화재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골동품만 문화재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근대자료도 문화재로 등록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서재를 뒤져보았다. 소월 시집이라면 나도 좀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기는 한국 사람치고 소월시집 한두 권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서재를 쭉 훑으면서 소월시집을 한 권, 두 권 찾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도 < 진달래꽃> 초간본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 그것은 영인본이었다. 실망은 되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소월시집이 얼마나 많이 출간되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 후 소월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틈틈이 소월의 흔적을 찾아 서울의 청계천이며 동묘, 인사동을 찾아다니다 보니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잠시 잊었다가 어느 날 잘 다니던 교직에서 명퇴하고 이번에는 아예 배낭을 메고 전국을 헤매기 시작했다. 세월이 더 가기 전에 소월의 이본異本 시집이 얼마나 더 있을까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나는지 소월의 자료들은 끝도, 한도 없이 샘물처럼 솔솔 잘도 나타났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가 약 1천8백여 점, 하지만 초간본을 비롯해 없는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일단 이쯤에서 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청춘시절 누구나 한번쯤 좋아했을, 아니 한 권쯤은 간직하고 있었을 소월시집, 그것을 추억하고 싶었다. 그러던 2014년 김소월이 세상 을 떠난 지 80주년이 되는 해에 그 동안 수집한 자료, 이본異本 시집 600종류와 그 외 김소월에 관한 자료 1,200점으로 4.6배판, 400쪽, 올컬러로 김소월 자료집 <진달래꽃 김소월>을 출간하고, 부천시청역 갤러리에서 추모 전시회도 열었다. 이 일은 한국에선 처음으로 마련된 일이었다. 그러나 뭔가 목록만으 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자료들을 서지학으로 좀 더 심도 있게 정리를 하고 싶었다. 도록도 궁금하지만 사람들은 그 내용이 더 궁금하리라 생각했다.

 

나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이름은 ‘미리내’ 은하수라는 뜻이다. 고등학교 1학년 15세의 나이로 시집 <미리내의 서울 이야기>를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고, 또 열여덟 살 나이에 배낭 하나로 세계 40여 나라를 누비기도 했다. 그런데 이 딸이 지금은 문학박사가 되어 문학 평론도 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그 딸에게 짐을 넘기기로 했다.

 

소월은 생존에 <진달래꽃> 시집 한권 밖에 없다. 그런데 이본異本 시집이 무려 600여 종류가 된다. 2016년 한 해 동안 소월과 함께 씨름하며 땀을 흘렸다. 사물을 보는 시각과 생각하는 점이 좀 달라 세대 차이는 있었지만 그래도 같이 시를 쓴다는 공통분모 덕분에 이 한 권의 책을 엮어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문학평론가 가톨릭대학교 김봉군 교수와 김소월의 친손녀 김은숙의 머리글이 있어 책이 더 돋보인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국민시인 김소월은 대한민국에 문학관이 없다. 이유는 고향이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향민은 서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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